동양인은 모나리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동양인은 모나리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 자 :크리스틴 카욜, 우훙먀오
  • 출판사 :에쎄
  • 출판년 :2016-09-28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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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작품, 다른 시각”



그림을 통해 신화·종교·자연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인문학적 문화 산책



“우리는 각 문화권의 특징이 드러난 작품을 감상하며 휴머니티를 상징하는 기호를 해독함으로써 비로소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_폴 리쾨르




이 책은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베이징에 살면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예술·문화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인 크리스틴 카욜과 우한대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중국인 우훙먀오가 그 주인공이다.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두 사람의 대화는 예술사에 대한 비평과 에세이의 경계를 스펙터클하게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서양 명화를 대표하는 작품 「모나리자」를 비롯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이미지로 재현한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화부터 자신을 ‘미노타우로스들의 왕’이라 칭한 피카소의 자화상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서로 다른 관점과 해석을 주고받으면서 동서양의 차이를 논한다.



서양의 종교화와 동양의 풍경화,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서양과 집단 속에서 정체성을 찾는 동양, 자연보다 인간에 가치를 두는 서양과 인간과 자연 사이의 거리를 없애고 자연과 하나 되고자 하는 동양의 서로 다른 문화 차이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두 사람은 예술가도 학자도 비평가도 아니지만, 예술사가 못지않게 동서양 예술과 문화에 대해 갖고 있는 진지한 생각을 나누고, 각자가 서로의 문화권을 접하면서 겪은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이 책은 유럽 박물관을 방문해 작품을 직접 감상해본 사람들이나 사진이나 영상으로 서양 명화를 자주 접하는 한국 독자가 쉽게 공감할 만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동양인으로서 서양화를 보며 품었던 궁금증과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비밀을 이 책에서 우훙먀오가 우리를 대신해 풀어줄 것이다.





‘모나리자’를 바라보는 동양의 눈, 서양의 시선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걸려 있다. 사람들이 그 앞에 몰려 있어 제대로 관람하기도 힘든 그림,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동양인인 우훙먀오는 모나리자의 미소에 먼저 주목한다. 저 미소는 무슨 의미일까? 뭔가 세련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하면서. 게다가 그런 신비로움의 배후에는 뭔가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상징이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는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학’과 유명 작품으로서의 ‘후광’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이런 영향은 동양 사람들로 하여금 ‘모나리자’의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느낌을 간직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한다.

프랑스인 카욜은 반대로 「모나리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풍부하다. 이 여인이 부유한 피렌체의 곡물 상인의 아내라는 설이 현재 유력하다는 점,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나 장신구로 봤을 때 당연히 귀족은 아니라는 점, 생김새도 당대의 미인에 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 동시대의 화려한 귀족이나 왕족의 초상화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는 점 등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카욜은 화가가 그린 이 여성이 ‘문제적 여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러한 사실로 인해 모나리자라는 그림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나리자의 시선과 표정은 그러한 프레임 속에서 음미된다. 게다가 서양인인 그의 눈에는 동양화풍으로 그려진 배경이 오히려 눈에 들어온다. 뿌연 안개에 싸인 것처럼 불투명하게 처리된 배경은 반에이크 등의 회화가 디테일한 부분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압도하는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원근법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훙먀오에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추상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따라서 모나리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물 뒤의 배경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 배경이 서양화의 전형적인 배경과 어떻게 다른지 미리 인지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그에겐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인물의 전면적 배치가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물의 압도감에 눌려 다른 걸 생각하기 힘들고, 계속 모나리자라는 여인의 정체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미스터리한 기분에 휩쓸린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지, 그런 것들을 알아야 저 미소의 의미가 밝혀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듯, 두 사람의 시각은 미묘하게 다르다. 물론 모나리자의 표정과 손짓을 만들어낸 섬세한 기법과 작품의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결합해서 미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에는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그림을 처음 볼 때 그 관람자의 시선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그의 배경지식이 어떻게 작품 이해에 투하되고, 그리하여 자신만의 종합적인 상을 얻어내는가에 있다.

이 책은 두 사람의 대화가 핑퐁처럼 이어지면서 어려운 주제를 자연스러운 구어체의 향연 속에 담아낸다.





인간의 정복인가, 자연과의 동화인가



중국인 화가 석도의 ‘달 아래 두 친구’를 그린 작품과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을 비교해보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 차이를 알 수 있다. 두 작품은 모두 두 명의 친구를 그린 그림인데, 그 표현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대사들」에서 홀바인은 두 대사의 전신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자세나 의상에서 자신감을 드러내며 이 작품이 인간이 모든 권력을 거머쥐었던 인문주의 시대의 작품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이에 더해 배경에 보이는 지구본, 류트, 수학책, 찬송가 등의 소품은 인류의 진보와 합리성 등의 인간적 가치를 드러내는 데 한몫한다. 반면 석도의 그림은 분명 ‘두 친구’를 주제로 한 작품임에도 작품에서 두 친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아 두 사람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석도는 산과 바위 등 자연 풍경을 훨씬 크게 묘사함으로써 도의 정신 등의 유교적 가치와 더불어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보여주고자 한다.

자연을 파악하고 통제하기 위해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인간 중심의 서양 문화와 인간과 자연 간의 거리를 없애고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는 동양 문화의 시각 차이는 동서양의 예술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동양인과 서양인이 각자 작품을 감상하는 관점에도 이렇듯 큰 영향을 미친다.





서양의 개인주의, 동양의 가족주의



두 사람은 성경에 나오는 ‘길 잃은 어린양’ 이야기를 렘브란트의 작품 「돌아온 탕자」와 연관지어 ‘개인’과 ‘집단’에 대한 동서양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양 백 마리를 이끌던 목자가 양이 한 마리 사라진 것을 알고는 그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를 버리고 길을 떠나는 길 잃은 어린양 이야기는, 나머지 양들을 버리고 오직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떠나는 게 올바른 일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자연히 가족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데, 서양인 카욜은 여기서 중요한 것이 고유한 ‘존재’란 사실이며 그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반대로 중국인 우훙먀오는 과거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예로 들며 ‘집단’을 더 중시하는 동양의 시각을 드러낸다.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동양에서는 자신을 독립적 주체로 인식하기보다 조직 내에서의 위치가 곧 자신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한 여학생이 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하려다 아이는 살리고 자신은 목숨을 잃은 사건이 보도되자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여학생의 목숨 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어요. 이런 논의 자체가 당신에게는 충격일지도 모르겠어요. 여학생은 사회 발전에 기여할 능력이 있는 모범생이었어요. 반면 어린아이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미숙한 존재였죠. 두 사람 중 어느 쪽을 잃는 것이 국가 입장에서 더 큰 손해가 될까요? 동양인이 왜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거예요. 하지만 사회질서와 ‘초자아’ 성립에 필요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계산하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사회를 위해 어느 쪽을 희생하는 것이 나은가. _우훙먀오(155쪽)





왜 서양 박물관에는 십자가 그림이 많을까



동양인들은 서양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역사, 종교, 신화, 정치, 윤리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많은 서양화의 주제로 다루어지는 ‘종교화’가 예수, 성모마리아, 십자가, 천사 등 성경을 어려서부터 접한 서양인에게는 종교를 꼭 믿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동양인의 입장에서는 “왜 화가가 하필 이 장면을 그렸을까?”와 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두 사람은 조토, 보티첼리, 프라 안젤리코, 베이던 등 여러 화가가 천사가 마리아의 잉태를 알리기 위해 방문하는 장면을 그린 「수태고지」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당신은 화가가 왜 이 장면을 그렸는지 의문을 품었지만 제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랍니다. 손톱만큼도 의문을 품은 적이 없을 정도로 말이죠. 어릴 적에 처음 본 책에서 수태고지 장면을 자주 봤기 때문에 제게는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와요. 이 그림에 나오는 여자는 두말할 것 없이 성모 마리아예요. 하지만 당신 덕분에 전 이 그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어요. 과거에는 그림에 나타난 대상의 의미가 아주 확실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림을 보기 시작한 것이죠. _카욜



‘수태고지’란 단어는 제게 이렇다 할 감흥을 주지 못해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마주보고 있는 그림일 뿐이죠. 성경을 잘 아는 중국인이라 해도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성경의 어떤 부분인지 알아맞힐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프랑스에서는 이 종교적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_우훙먀오(20~21쪽)



동양인들은 고전 작품이라고 하면 쉽게 ‘풍경화’와 ‘서예’를 떠올린다. 동양에서는 화가의 손놀림이 만들어낸 공간이 곧 작품이 된다. 동양 풍경화에 담긴 풍경은 성경처럼 어떤 성스러운 텍스트를 해석해 이미지로 재현한 것이 아니다. 서양에서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재현하는 것과는 다르게 동양은 도교 사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동양인이 볼 때 서양인은 그림을 ‘읽고’ ‘해석하고’ ‘분석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물건이나 인물, 화가가 쓴 색상 등이 그림에서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밝히고 해석하는 것이 서양의 감상법이라면, 이러한 ‘해석’과 ‘감상’은 그림을 통해 스스로 무엇을 ‘느끼는지’가 더 중요한 동양 문화에서는 생소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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